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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045.jpg류정아 | <너울> 편집위원장

지금은 코너가 없어져서 볼 수 없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당히 재미있게 본 개그 프로그램의 한 코너로 <대화가 필요해> 라는 것이 있었다. 달랑 3식구가 밥 먹는 자리에서 겨우 얼굴을 보며 뭔가 말을 해야 하긴 하는데, 특별히 할 이야기는 없고, 겨우 “밥 먹자”로 입을 열고 한다는 이야기가 상대방의 단점을 꼬집거나 잔소리를 해서 상대방을 짜증 나게 하고 결국은 치고받고 싸 우면서 대화의 상황을 닫아버린다. 남의 일이 아니다.
우리 집도 매일 각자 바쁜 일정의 하루들을 살아내고 주말에나 겨우 한 밥상을 앞에 놓고 밥을 먹는다. 어디서부터 이야기 를 꺼내야 할지 몰라 침묵이 흐를라치면 큰 아이가 어김없이 한마디 한다. “우리 집은 진짜 대화가 필요해!!” 다행히 ‘철딱 서니 없는’ 둘째 꼬마 녀석이 요즘 천 개의 태양보다 더 정열적으로 사랑한다는 여자친구 이야기를 하면서 종알거린다. 나 는 시험점수를 바닥으로 깔고 오면서 여자친구만 밝힌다고 놀리면서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아이의 ‘사랑 타령’에 맞장구 를 쳐주며 ‘소통’하는 즐거움을 맛본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여기저기서 어찌나 소통만을 외쳐대는지 귀가 따가울 정도이다. 쌍방향 라디오, IPTV, 숨 막 히는 인터넷 덧글, 끊임없이 오고가는 문자 메시지, 매일매일 읽지도 않고 지워버리는 수많은 메일들……. 소통을 할 수 있 는, 소통을 하게 하는 엄청난 테크놀로지의 위력이 너무 큰 탓일까? 굳이 입을 열고 말할 필요가 없는 것 같기도 하다. 그렇 게 엄청난 정보를 서로 주고받고 있지만, 우리는 여전히 ‘소통’이 안 된단다. 소통을 해야 한다고 그렇게 외쳐대건만, 혹시 나 내가 의도하는 소통이 나에게 허용된 범위를 넘어서 나 자신에게 부메랑으로 날아와 다칠 것 같아 그냥 입을 다물기도 한다. 아니면 내가 원하는 바를 이해시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이해시키고자 하는 과정을 처음부터 생략해 버린 다. 타인을 인정하다가 자기가 가진 ‘자아’가 상처받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심에 타인을 인정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사회란 원래 서로 다른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서로 부딪힐 수밖에 없고, 그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관계의 중요성 을 재인식하는 것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 차이를 인정하려 하지도,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출산을 거부하고 사회 곳곳으로 파고드는 여자들이 부담스럽고, 생존 기간은 점점 길어지는데 밀치고 올라오는 젊은이들 이 겁나고, 허드렛일은 하기 싫지만 주변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거북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와 다른 생각을 하고 있 는 사람은 도대체 꼴도 보기 싫다.
자신 있게 먼저 손 내미는 것은 두렵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은 잔뜩 의심스러워 보이는 사회. 이 사회 속에서 겨우 겨우 숨 통을 트고 살고 있는 사람들은 개미 떼도 아니고 꿀벌 떼도 아닌 서로 어울려 환하게 웃고 있는 인간이고 싶다. 지갑 속에 잘 넣어둔 천 원짜리를 한 장 꺼내 자선냄비에 넣고 누가 볼세라 휑하니 뛰어가는 저 사람의 뒷모습에서 코끝이 시큰해지 는 이유는 무엇일까?